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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3-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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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한 관 식 작가

기사입력 2023-02-0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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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5)
“손잡아도 될까?”
미주가 결혼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든 이 모든 행동이 눈치를 보며 물어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제약이 이토록 크게 작용하여 묻고 있는 관계로 퇴보한 것일까. 퇴보라는 말로 두 사람의 사이를 평가하기에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었다. 결혼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친 미주를 두고 저울질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통념으로 온당치 못했다. 퇴보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없을 법한데, 나는 빠져나갈 변명을 ‘미련’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연락도 미주가 먼저였다. 은밀히 따져보니 발화의 포인트는 내가 미주에게 던져준 것도 같았다.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장에 찾아와 축의금이라고 낸 봉투 속 현금의 애매함 탓이 컸다. 오만 원 한 장과 오천 원 한 장으로 채워진 축의금에 대한 암호를 해독할 때, 미주는 선뜻 ‘미련’으로 읽었다. 난 약간의 혼란을 주기위해 못 먹는 밥에 재 뿌리는 심정을 앞세웠는데 말이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출근한 남편을 뒤로한 미주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빤, 새삼스럽게, 그전처럼 해요. 손을 잡던 엉덩이를 잡던지...”
어찌나 강렬하게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그런 말인지 미주는 알까. 괜히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 무안해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는 듯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미주의 알몸만 탐이 나서 아파트에 데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아파트 공사장 부근에 사는 청둥오리가 먼저였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도덕적인 면에서 죄의식을 조금 덜어낼 수 있는 탈출구를 만난 셈이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여기 잠깐 있어봐. 집에 가서 피크닉 매트를 가져오려고 해.”
미주는 묻지 않았다. 놀랄만한 이벤트가 감춰져 있다는 생각에 선뜻 승낙을 해주었다. 정말 빛의 속도로 다녀왔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대기 중이었고 거기다가 초단위로 아끼고 싶은 마음에 뜀박질까지 서슴없이 감행했다. 기대했던 이벤트는 달랑 피크닉매트 한 장이었지만 미주는 쉽게 실망하지 않았다. 

마치 연애초기시절처럼 모든 것이 신기해 미친다는 표정으로 깔깔거렸다.

 

“앞으로 우리 계획은 이래. 지금 아파트 주변은 공사 중단으로 곳곳에 웅덩이가 숭숭 나있어. 가장 최적인 장소를 이미 물색해뒀어. 거기에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청둥오리를 지켜볼 예정이야. 재미있을 것 같지? 내가 놓아둔 먹이 덕분에 잘만 하면 손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거야. 겨울이 지나면 수천 킬로 하늘로 비행하여 몽고나 시베리아로 떠날 청둥오리 한 쌍을 배웅해주는 거와 마찬가지지. 심장박동수가 빨라지지 않아? 은닉한 우리를 모르고 먹이에 열중하는 청둥오리에게 가볼까요? 나의 공주님.” 
미주는 ‘아, 그거였어.’ 하는 표정으로 따라왔다. 

“오빠는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었어. 그것 때문에 내 미래를 맡기기엔 불안했던 거야.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이런 모습을 보니 뭐 봐줄만 하네. 호호호.”
잡곡 쌀을 주변으로 듬뿍 뿌려주었다. 미주가 동참한 자리니 만큼 성공적인 이벤트를 기원했다. 

그리고 엎드린 자세로 청둥오리를 기다렸다. 미주와 얼굴이 마주치자 주변시선은 아랑곳없이 입술을 맞추었다. 달고 짜릿했다. 갑자기 후두둑 소리가 들렸고 이제껏 한 쌍만 드나드는 곳에 수십 마리 청둥오리가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계속
 







 




 


 
 
 



















 


 


 

ycinews (yc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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