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자동차 멎는 소리가 난 후 왁자지껄하더니 한 팀이 추풍령 쪽으로 가는 것을 잠결에 어렴풋이 들었다.
그러나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4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철영(撤營), 배낭을 챙겨 일어서니 5시 20분이었다.
야영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지난밤 깔고 잤던 포장지들을 모아 본래 있던 곳으로 옮겨 놓고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본 다음 출발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능선에 올라서니 오른쪽의 동쪽 하늘이 석양 때보다 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제 오후에는 꽤나 시원한 산행을 했는데‘오늘은 무척 덥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잡목 사이로 들어서니 능선 왼쪽 부락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무슨 놈의 노래인가 하고 있는데 오른 쪽에서는 폭음탄을 잇달아 터뜨려 숲 속의 고요를 깼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비쳐드는 조용한 숲 속을 걸으며 새들의 지저귐과 나무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잠에서 막 깬 벌레들의 속삭임 등 온갖 작은 소리를 듣는 아침 등산의 재미를 빼앗아 버렸다.
무심히 지나가면 들을 수 없는 이 소리들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면서 조그마한 행복감에 젖어왔는데….
잡목 숲에 이슬이 별로 없어 다행이었다. 40여분 만에 농로와 마주쳤다. 마침 왼쪽의 과수원에서 들리는 방송의 일기예보에서 내일은 전국에 비가 온단다.
하루 일정이 더 남았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오른쪽의 도로를 따라 200여m 가서 백두대간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얼마 걷지 않아 거미줄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도 꼭 얼굴 정도의 높이여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필이면 왜 사람이 지나는 길에 이렇게 거미줄을 쳐 놓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짜증도 났지만 여러 번 스키스톡으로 거미줄을 없애다 보니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그들도 생계 수단으로 그물을 쳐 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데 인간이라는 놈은 지나가는 족족 그들의 삶의 터전을 완전히 못쓰게 만드니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거미줄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이 없을까 하고 궁리도 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미줄을 피해 둘러갈 수도 없었다.
희룡재를 7시에 통과하고 나니 완만하게 뻗어 있던 백두대간 앞에 갑자기 봉우리 하나가 우뚝 막아섰다.
저것을 넘어 개터재까지 내려가려면 땀께나 빼겠거니 하면서 걷다보니 7부 능선을 따라 좁다란 길이 나 있어 걷기는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사방에서 구름이 몰려들면서 가는 빗방울까지 흩날렸다. 개터재를 넘을 즈음 다행히 비가 멎었다.
농로로 되어있는 재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30여m 올라가 능선의 큰 나무 아래에 배낭을 벗어 놓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505m봉을 지나 백학산이 건너다보이는 능선에 이르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곧 비가 멎었으나 중간 중간에 있는 키 작은 잡목지대에서는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잡목 잎이 물을 머금고 있어 조금만 스쳐도 옷이 흠뻑 젖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날씨가 더운데 우의를 입을 수도 없었다.
백두대간을 자르고 포장도로가 넘어가고 그 위로 동물들이 백두대간을 다닐 수 있는 통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백두대간에서는 처음으로 본 동물을 위한 조그마한 배려였다. 동물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도 도로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불편이 없으니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다. 한 가닥의 도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밸런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균형을 잃기 시작한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지 않던가.
인간이 편하게 살자고 백두대간을 잘라 도로를 내었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그곳을 무대로 삼아 살아가는 동물들일 것이다.
다음은 식물들로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으로 인한 도로 주변 나무의 피해도 문제지만 산으로의 접근성이 좋아져 많은 사람들이 숲 속에 들락거려 새나 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산나물과 나무도 견뎌나지 못할 것 아닌가.
이렇게 산에 있어야 할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나면 그 황폐화의 종착지에 선 인간은 삶 자체를 위협받을 것이다.
백학산 정상이 있는 큰 능선이 빤히 쳐다보이는 안부 소나무 아래에서 약 30분간 점심을 먹고 쉰 다음 11시 45분에 능선에 올라섰고 15분 후에 정상을 밟았다.
몰려드는 구름이 심상치 않아 상주시청산악회가 1998년 5월에 세운 표지석을 확인만 하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안가 굵은 빗방울이 두둑두둑 나뭇잎사귀를 치는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우의를 입어야 할 것 같아 끄집어냈더니 다행히 곧 비가 그쳤다. 등산로가 비에 젖고 질퍽거려 배낭을 내려놓고 우의를 넣을만한 적당한 장소조차 없었다. 그대로 들고 내려가려니 경사가 심한데다 비에 젖은 길이 미끄러워 애를 먹었다.
백학산 정상에서 도로까지 보통 20분이면 충분할 것을 30분이나 걸렸다. 도로가 개울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더워 비누 없이 머리를 감고 세수도 했다.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산자락을 돌기도 했지만 이렇게 몸을 씻을 만큼의 물을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물이니 갈 길이 멀지 않다면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앉아 몸을 식히며 천천히 쉬다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일어서야 했다.
도로를 따라 20여m 내려오니 등산로는 다시 능선으로 이어졌다. 잡목 숲 속을 들어서면서 다시 거미줄이 앞을 막았다.
지대가 낮아서인지 거미가 더 많은 듯 했다. 될 수 있으면 거미줄을 다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며 한 30분 걸었을까, 30대의 젊은 산 꾼이 불쑥 나타났다.
대전에 산다는 이 친구는 화령재에서 시작했다면서 큰재까지 가는 것이 이날의 목표라고 했다. 그도 나처럼 거미줄이 무척이나 귀찮았든지“이제 거미줄이 없어 좋겠다.”면서“식수가 어디쯤에 있더냐?”고 물었다.
도로가에서 세수한 곳을 알려주면서 “물맛도 괜찮더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와 헤어진 지 10여분 지나니 농로가 나왔고 등산로는 길 건너편 소나무숲 속으로 다시 이어졌다.
얼마안가 평탄한 과수원 옆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300m정도 내려가다 보니 도로확장과 동시에 측구공사가 한창인 도로가 앞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개머리재였다. 하필이면 왜 개머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하면서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길가 나무 그늘에 배낭을 벗어 놓고 잠깐 쉬었다. 고개 이름의 유래라도 물어보려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주변의 넓은 과수원에는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도로를 가로질러 과수원을 왼편에 두고 산 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오르니 무성한 잡초 가운데로 길이 열려있었다.
억새풀과 여러 가지 넝쿨이 뒤엉킨 사이로 빠져나가려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한사람 겨우 빠져나갈만한 길을 큰 배낭을 메고 가려니 힘든데다 바닥까지 미끄러웠다.
겨우 100여m를 10분이나 걸려 통과하고 나니 땀과 풀잎에 묻어있던 물기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능선에 올라서니 지루한 낙엽송 조림지대가 계속되더니 급경사의 내리막길 저 아래쪽에 과수원이 있고 자동차도 제법 많이 다니는 지기재가 보였다.
사과와 배 밭을 왼편에 두고 농로를 따라 내려가니 동서로 달리는 도로변 언덕에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표시한 입간판이 서있었다.
백두대간의 동쪽 낙동강 수계와 서쪽의 금강 수계로 나뉜다고 했다.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내려온 비는 이 도로 어딘가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떨어지면서 곧 동쪽과 서편의 다른 세계로 나뉘어 도로 따라 흐르겠지만 이날 비는 겨우 도로를 적실 정도여서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비 때문에 쉴 곳이 마땅찮아 도로 건너편의 금은골로 들어가는 농로 따라가는 동안 다행히 비가 멎었다. 풀잎에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도로 오른쪽의 지기재등 코스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로를 300m정도 걸어가다 마을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오른편으로 난 농로 따라 10여m 들어가니 백두대간의 등산로가 나왔다.
큰 소나무 아래에서 10여분 쉬면서 간식을 먹은 다음 왼편으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은왕봉을 바라보며 잡목지대를 지나니 푸석 바위 지대였다.
능선에 올라서서 그대로 은왕봉 쪽으로 가는데 띠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지도를 꺼내 확인하니 길을 잘못 들고 있었다.
처음 올라선 능선으로 되돌아가니 등산로는 능선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숙밭골을 왼편에 두고 낮은 능선을 1시간 정도 걸으니 밭이 나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얼마안가 신의터고개에 도착한 것은 17시 10분이었다.
북쪽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빗방울까지 간간이 흩뿌렸다. 산행을 중단하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상주행 버스가 왔다. <경북제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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